자책골 넣었다고, '총격 살해'...'월드컵 비운의 희생양' 故 에스코바르 사망 32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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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ALKOREA] 김경태 기자= 1994년 7월 2일. 지금으로부터 32년 전 오늘은 콜롬비아 국가대표 수비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날이다.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 명문 아틀레티코 나시오날에서 활약하며 1989 남미축구 연맹(CONMEBOL)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끄는 등 남미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받았다. 국가대표팀에서도 핵심 자원으로 자리매김하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콜롬비아의 사상 첫 16강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그는 당시 세계 최고의 클럽이었던 AC 밀란 이적을 목전에 둘 만큼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
자연스레 1994 국제축구연맹(FIFA) 미국 월드컵에서도 그의 활약에 큰 기대가 모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미국 월드컵은 그의 생애 마지막 대회가 되고 말았다.
우승 후보로 꼽히던 콜롬비아는 조별리그 2차전에서 개최국 미국을 만났다. 이 경기에서 에스코바르는 크로스를 걷어내려다 치명적인 자책골을 기록하고 말았다. 결국 콜롬비아는 미국에 1-2로 충격패를 당했고,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안고 씁쓸하게 여정을 마무리해야 했다.
대회 조기 탈락 후 콜롬비아 현지에서 에스코바르를 향한 비난 여론은 급격하게 악화됐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향 메데인으로 돌아간 그는 결국 비극의 희생양이 됐다. 7월 2일 새벽, 클럽 주차장에서 괴한들과 마약 밀매업자들과 시비가 붙은 에스코바르는 그들의 경호원에게 6발의 총탄을 맞고 현장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불과 27세였다.
어느덧 에스코바르가 세상을 떠난 지 32년이 지났지만, 친형인 산티아고에게는 동생이 자책골을 넣던 순간부터 살해당했을 당시의 끔찍한 기억이 당장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남아있다.
산티아고는 2일(한국시간) 미국 매체 '디애슬레틱'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가족에게는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우리는 경기장에 있었고, 에스코바르가 머리를 감싸 쥐고 그라운드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고 참담했던 심경을 고백했다.
이어 에스코바르가 자책골을 넣고 절망에 빠졌던 순간을 회상했다. 그는 "동생은 AC 밀란에서 프랑코 바레시의 후계자가 될 예정이었기에 이번 월드컵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치고 싶어 했다"며 "하지만 자책골을 넣은 후 내게 '내 평생 자책골을 넣은 적이 없었는데, 하필 월드컵 무대 한가운데서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라며 자책했다. 그 일은 동생을 완전히 무너뜨렸고 깊은 절망에 빠뜨렸다"고 털어놓았다.
당초 산티아고는 불길한 예감에 동생의 귀국을 강하게 만류했다. 하지만 에스코바르는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콜롬비아 복귀를 택했다. 그러나 이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졌고, 에스코바르는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머물고 있던 산티아고는 새벽 2시, 전화 한 통으로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전해 들어야만 했다. 그는 "그 소식을 들었던 순간의 장면들은 내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다"며 "에스코바르와 함께 겪었던 모든 일들, 그리고 범인들이 그를 잔인하게 죽인 방식 때문에 내 인생에서 가장 끔찍하고 힘든 순간이었다. 동생은 결코 그렇게 죽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고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의 죽음은 내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32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내 동생을 위해 운다. 축구를 사랑했고, 사람들을 즐겁게 했으며, 조국과 고향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을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에스코바르의 사망은 콜롬비아 축구계에 파편을 남겼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축구계를 장악하고 있던 카르텔의 검은 자금이 끊기면서 자국 리그의 재정적 붕괴가 이어졌다. 여기에 더해 열악해진 환경 속에서 세대교체마저 실패한 콜롬비아는 1998 프랑스 대회 이후 무려 16년 동안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하며 암흑기를 견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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