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전 4강 신화땐 각목 들었다…주먹 불끈 쥔 ‘원조 붉은악마’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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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에 멕시코 땅에서 4강 신화를 보고 싶다는 박태율 씨. 피주영 기자
지난 11일 멕시코시티. 지인과 식사를 마친 박태율(69) 씨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붉은색 홈 유니폼을 고이 접어 자신의 차량 조수석에 포개뒀다. 12일 과달라하라에서 열릴 체코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입을 응원복이다.
그의 월드컵 응원 소식은 현지 교민 사이에서 화제다. 34년째 멕시코에 거주 중인 한인 1세대이자 교민들의 ‘큰 형님’인 그는, 단순히 최연장자라서 존경받는 게 아니다. 한국 축구가 세계를 놀라게 한 ‘4강 신화’의 현장을 모두 직접 목격한, 교민 사회 유일한 ‘원조 붉은 악마’이기 때문이다. 교민들은 “한국 축구사의 산증인으로 통하는 분”이라며 “대표팀도 좋은 기운을 받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 씨의 축구 사랑은 뿌리가 깊다. 서강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2년 멕시코로 유학 왔다. 평소 스페인어와 중남미 지역에 관심이 많았다. 터를 잡고 섬유업과 요식업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박태율 씨는 손흥민에게 힘을 보태고자 한국의 모든 경기 직관에 나선다. 중앙포토
낯선 땅에서 동양인으로 살아가는 건 녹록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힘이 되어준 건 ‘축구’였다. 유학 2년 차였던 1983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20세 이하 월드컵의 전신)가 멕시코에서 열렸다. 박종환 감독이 지휘한 한국은 개최국 멕시코를 연파하며 4강에 올랐다. “한국 선수들이 저렇게 열심히 뛰는데, 우리도 뭔가 해야겠더라고.” 박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였다. “그래서 8강전을 앞두고 응원단을 꾸렸어. 8강전 장소는 몬테레이로 멕시코시티에선 1000㎞, 차로 12시간 거리였어. 당시 한인이 20여 명이 십시일반으로 버스를 빌려 타고 먼 길을 떠났지.”
한국은 우루과이를 꺾고 기적의 4강에 올랐다. 박 씨는 “응원단 규모가 너무 작아 위축될까봐 인근 목공소에서 각목을 구해왔어. 각목을 부딪치며 탁탁 소리를 낼 때마다 ‘대한민국 이겨라’를 외쳤는데, 그 기운이 선수들에게 전해졌던 것 같아”라고 말했다. 3년 뒤 1986 멕시코 월드컵도 박 씨는 잊지 못한다. “말로만 듣던 차범근이 멕시코시티에 나타났어.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와 붙는다는 거야. 교민들 난리가 났지.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데, 교민들이 다들 어려웠어. 선수단 호텔 근처에서 응원할 때 오히려 한국대표팀에서 우리들에게 식사를 대접했지 뭐야, 눈물 겨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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