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명 파동'에 무너진 OB를 우승팀으로…'국민 덕장' 김인식 탄생시킨 잠실
작성자 정보
- 뉴스매니아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64 조회
- 목록
본문
출처:두산 베어스
(MHN 정철우 기자) 잠실야구장은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이곳에서 성장했고, 수많은 명승부가 펼쳐졌다. 하지만 잠실이 만들어 낸 것은 선수들만이 아니었다. 한국 야구 지도자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명장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국민감독' 김인식 전 감독이다. 강압적인 통솔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리더십으로 무너진 팀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에게 잠실은 단순한 홈구장이 아니었다.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덕장'이라는 이름을 얻은 특별한 공간이었다.
김인식 전 감독이 잠실야구장의 마지막 정규시즌 경기에 시구자로 나선다. 두산 베어스는 12일 잠실에서 열리는 롯데 자이언츠와 시즌 최종전 시구를 김 전 감독에게 맡겼다고 발표했다. 1995년부터 2003년까지 9년 동안 베어스를 이끌며 두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낸 명장이다. 잠실의 마지막 정규시즌을 장식할 인물로 이보다 더 상징적인 선택을 찾기도 쉽지 않다.
김 감독이 잠실에서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은 단순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는 사실이 아니다. 1995년 우승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당시 OB 베어스는 우승을 꿈꾸기 어려울 정도로 팀 내부가 무너져 있었다. 선수단의 질서는 흔들렸고,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팀을 불과 1년 만에 정상으로 이끌었다. 김인식이라는 지도자의 진정한 가치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사건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OB는 윤동균 감독과 주축 선수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결국 선수단의 집단행동으로까지 번졌다. 윤 감독이 선수들에게 "말을 듣지 않을 거면 서울로 올라가라"는 취지로 질책하자 일부 선수들이 실제로 팀을 이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항명 파동이었다.
당시 스포츠계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충격은 더욱 컸다. 감독의 권위는 절대적이었고, 선후배 사이의 위계질서 역시 엄격했다. 선수들이 감독의 지시에 집단으로 반발한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윤동균 감독은 OB를 대표했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었다. 팀의 상징과도 같았던 지도자와 주축 선수들이 정면으로 충돌했으니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단순히 감독과 몇몇 선수들의 갈등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팀 전체가 흔들렸다. 선수들 사이에도 균열이 생겼고, 구단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도 차가워졌다. 당시 OB는 전력 자체도 압도적인 팀이 아니었다. 내부 갈등까지 겹치면서 당분간 하위권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한마디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다.
이런 팀을 넘겨받은 인물이 김인식 감독이었다.
김 감독이 선택한 방법은 강한 통제가 아니었다. 이미 선수단의 마음이 갈라질 대로 갈라진 상황에서 또다시 권위를 앞세워 선수들을 억누르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선수들을 몰아세우기보다 먼저 마음을 열도록 만들었다. 갈등의 중심에 있었던 선수들에게도 과거의 잘못만을 들이대지 않았다. 다시 야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 힘을 쏟았다.
관련자료
-
이전
-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