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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의 멕시코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와 댈러스에 머물고 있다. 현재 참가팀들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갈라놓는 조별리그 마지막 단계가 한창 진행 중이다. 같은 조의 두 경기가 동시에 킥오프되지만, 호텔방의 TV는 단 한 대만 놓였다. 어느 한 경기도 놓치기 싫어서 중계권자인 폭스 스포츠 온라인 유료 회원에 가입하려는데, 때마침 3일간 무료 체험을 제공한단다. 이틀 뒤 32강부터는 시간대가 중복되는 경기는 없기에 금전 지출 없이 참가국들의 라스트 스퍼트를 관전할 수 있게 됐다.
조별리그 3차전은 여러 경기 결과가 얽히고설켜 적지 않은 팀들의 진로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단순히 눈앞에 펼쳐지는 플레이의 내용에만 집중하기엔 머릿속에 넣어두고 고려해야 할 점들이 너무나 많다. 빌드업의 구조, 각 라인의 간격 유지와 운용, 적진 공략의 패턴, 팀으로서의 유기적 조합 등의 다양한 내외적 요소들을 오직 한 경기에만 집중력을 쏟을 때만큼 세밀하게 살피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TV와 노트북 모니터를 수시로 번갈아 쳐다봐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시선은 분산되고, 판단은 늦어진다.
어쩔 수 없이 분석적 관전 자세는 잠시 거두고, 순수한 승부의 흐름에 올라타게 된다. 이때, 오히려 축구가 지닌 원초적 재미를 선명하게 맛보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스페인과 우루과이, 카보베르데와 사우디아라비아가 맞붙은 H조 최종전이 바로 그랬다. 전술 분석판의 화살표 혹은 포메이션을 논하는 숫자의 나열보다 득점 여부, 스코어의 우열이라는 단순함이 만들어내는 순위표 변화가 더욱 큰 물결의 동요를 일으켰다. 이 파장은 다른 경기장, 다른 조를 거쳐 대한민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카보베르데는 조별리그 경기를 모두 비기고도 조 2위를 확보하며 32강 입성에 성공했다. 3전 3무 승점 3, 단 한 차례의 승리 없이 살아남았으나 그들의 행보를 소극적으로 평가해서는 곤란하다. 초심자의 낯섦, 생소한 긴장 속에서 자신들의 페이스를 무너뜨리지 않았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단 한 차례의 승리도 없었던 것이 아니라, 단 한 차례의 패배조차 없었던 것이다. 카보베르데는 월드컵의 거대한 무게를 끝내 버텨냈고, 본선 첫 출전 만에 토너먼트 진출이란 값진 성과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때로는 끈질긴 생존력이 승리의 화려함보다 더 큰 보상을 안겨 주기도 한다는 좋은 본보기다.
카보베르데를 지탱한 힘이 간절함이었다면, 우루과이를 추동한 힘은 조금은 다른 종류의 절박함이었다. 전반전이 끝나갈 무렵, 골키퍼의 실수로 스페인에 선제골을 헌납한 우루과이는 그대로 패한다면 조별리그 탈락이었다. 전방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고, 공격하지 않을 수 없었고, 밀어붙이지 않을 수 없었고, 어떻게든 스페인의 골문을 열어젖히지 않을 수 없었다. 거칠고, 투박하고, 무모하고, 때론 신경질적이었지만 골을 넣고자 하는 마음, 32강 진출이란 염원은 TV 밖으로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런 절박함의 이해는 전술의 해설이나, 매커니즘의 분석 이전에 놓인 축구의 원초적 단면이 아닐 수 없다. 0-1, 패배와 탈락은 피하지 못했더라도 그런 몸부림에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박수를 보내야 마땅하다. 이런 관점에서 며칠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상대한 태극전사들에게는 같은 박수를 보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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