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월드컵 3회 개최, 멕시코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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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통산 3회 우승을 차지한 브라질의 펠레. AP=연합뉴스
사상 최초로 통산 세 번째 지구촌 축제를 개최하는 영예를 안은 멕시코의 첫 월드컵은 1970년 대회였다. 이에 앞서 멕시코는 2년 전인 1968년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하계올림픽을 개최했다. 당시 멕시코를 지배하던 정권은 군사정권이 아니라 제도혁명당(PRI)이라는 거대 정당. 이 정당은 1929년에 창당해 2000년까지 무려 71년 동안 대통령직과 지방 정부를 독점했다. 노벨문학상(2010년) 수상자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당시 멕시코의 PRI 체제를 두고 ‘완벽한 독재(La dictadura perfecta)’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PRI 정권은 정보기관과 군대를 동원해 좌파 세력, 학생 운동가, 반정부 인사를 비밀리에 납치, 고문, 살해하는 국가 폭력을 자행하는 이른바 ‘추악한 전쟁’ (Guerra Sucia)을 벌였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틀라텔롤코 학살(Tlatelolco massacre)’. 올림픽 개막(10월 12일)을 열흘 앞둔 1968년 10월 2일, 멕시코시티 틀라텔롤코 광장에서 제도혁명당(PRI)의 장기 집권을 규탄하던 대학생과 시민들을 향해 군대와 경찰이 무차별 발포하여 학살한 사건이다. 국제 인권 단체와 역사학계는 최소 300명에서 최대 500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부상하고 투옥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월드컵 최초의 공인구 텔스타. 연합뉴스
이로부터 2년 뒤 열린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은 이전 대회와는 확 달라진 역사적 대회로 평가된다. 먼저 공인구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흔히 ‘점박이 공’으로 알려진 아디다스 텔스타(Telstar)는 1970년 멕시코 대회에서 사용된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공인구이다 . 우리가 흔히 '축구공' 하면 떠올리는 흰색과 검은색 오각형이 섞인 디자인으로 축구 역사를 바꾼 아이콘이다. 이름은 1962년 미국이 쏘아 올린 세계 최초의 민간 통신 위성인 ‘텔스타(Telstar) 위성’에서 따왔다.
이 대회에서는 옐로 카드(경고)와 레드 카드(퇴장)가 최초로 도입됐고 경기당 2명의 선수 교체가 처음으로 허용됐다. 또 사상 최초로 컬러 TV로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위성 중계를 통해 컬러로 월드컵 경기가 방영되면서 축구가 전 세계적인 스포츠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 대회에서는 원조 ‘축구황제’ 펠레가 화려한 대관식을 치렀다. 브라질은 결승에서 펠레의 선제골을 시작으로 이탈리아를 4대 1로 꺾고 통산 3회 우승을 차지하며 쥘리메 컵을 영구 소유하게 됐다. 이 대회에서 브라질은 6전 전승 우승 신화를 만들었는데 펠레, 자이르지뉴, 토스탕, 히벨리누 등으로 구성된 1970년 브라질 대표팀은 역사상 가장 완벽한 팀으로 평가 받고 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한 마라도나. AP=연합뉴스
16년 뒤에 열린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은 한국이 1954년 이후 32년 만에 출전한 대회이다. 아르헨티나 축구 천재 디에고 마라도나가 대관식을 치렀고 숱한 명승부가 펼쳐졌다. 대표적인 경기는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8강전. 4년 전인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이 터졌고 승리한 영국과 패전의 멍에를 쓴 아르헨티나는 그야말로 ‘원수’가 되었다. 사생결단의 승부에서 마라도나는 그 유명한 ‘신의 손’으로 선제골을 넣은 뒤 50m 이상을 드리블하며 6명을 제치고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을 터뜨려 2-1 승리를 이끌었다. 마라도나는 벨기에와 4강전에서도 혼자 신기의 2골을 뽑아낸 뒤 결승에서 서독을 3-2로 물리치는 데 기여하며 대회 MVP를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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