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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대에서 멀어졌지만 ‘포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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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치아 선수 정예은(28)이 7일 진주장애인문화체육센터에서 보치아 공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다솜 기자

보치아 선수 정예은(28)이 7일 진주장애인문화체육센터에서 보치아 공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다솜 기자

"졌어요…."

정예은(28)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휴대전화 너머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는 15일 제주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보치아 혼성 3인조 단체전에서 4-10으로 지고 나서 전화했다.

정예은은 12일 오후에 열렸던 보치아 여자 개인전 BC2 본선에서도 2-3으로 패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바라던 메달은 손에 쥐지 못했다.

정예은은 여자 개인전에서 파란 공을 들었다. 보치아는 흰색 표적구에 자신의 공을 상대보다 가까이 붙여서 점수를 얻는 경기다. 누가 더 많이, 가깝게 공을 붙이느냐가 승패를 결정한다.

출발은 좋았다. 정예은은 1엔드에서 먼저 1점을 따내고, 2엔드까지도 1점을 보탰다. 그러나 3엔드에서 흐름이 바뀌었다. 상대가 굴린 빨간 공이 표적구 가까이 붙으면서 한 번에 2점을 가져갔다.

다시 경기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마지막 4엔드에서 승부가 갈렸다. 마지막 한 점은 정예은에게 오지 않았다. 경기는 2-3으로 끝났다. 정예은의 공이 멈춘 자리에서 경기도 끝났다. 경기 시작 약 36분 만이었다. 기록지에는 상대 선수의 이름이 승자로 남았다.

15일 제주 사라봉다목적체육관에서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보치아 종목 시상식에 놓여있는 메달. 정예은은 시상대 위에 놓인 메달을 가져가지 못했다. /대한장애인보치아연맹

15일 제주 사라봉다목적체육관에서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보치아 종목 시상식에 놓여있는 메달. 정예은은 시상대 위에 놓인 메달을 가져가지 못했다. /대한장애인보치아연맹

보치아 공을 잡다

정예은은 31주하고도 4일 만에 세상에 나왔다.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서 생활했다. 뇌 병변 장애가 있는 그에게 병원은 어린 시절부터 익숙한 공간이었다.

학교에 다닐 때도 또래처럼 방학을 보낼 수 없었다. 친구들이 방학이면 학교를 벗어나 뛰어놀 때 정예은은 병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리 경련으로, 근시와 난시, 원시 등으로 수술했다. 일상생활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보내려면 필요한 수술이었다.

 

병원에만 있던 정예은은 보치아를 접하면서 경기장에 나서게 됐다. 중학교 2학년이 되던 2013년에 처음으로 보치아 공을 잡았다. 아버지가 태권도 관장이고, 오빠가 사범이었기에 운동은 낯설지 않았다.

정예은은 진주장애인복지관에서 보치아를 시작했다. 중증 장애가 있고, 왼손에 경직이 있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 많지 않았다. 자기 몸에 맞는 종목을 찾아다니다가 발견한 것이 보치아였다.

정예은은 운동을 시작한 첫해부터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 시상대에 올랐다. 2013년 BC1 단체전 동메달을 시작으로 2014~2016년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잇달아 3위를 했다. 고등학교 3학년에는 BC1 개인전 은메달을 가져갔다. 같은 해 두바이 장애청소년경기대회에서 개인전 6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시상대가 익숙했던 소녀

학생 선수 시절 정예은에게 시상대는 익숙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성인 무대에 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보치아는 장애 정도와 운동 기능에 따라 등급을 나눈다. 정예은은 BC1에서 BC2 종목으로 출전하게 됐다. 더 높은 운동 기능을 가진 선수들과 경쟁하게 됐다.

성인 무대의 벽은 높았다. 종목이 바뀌니 경기력도 달라졌다. 메달을 좀처럼 쥐기 힘들었다. 2019년 혼성 3인조에서 4위에 올랐다. 2022년부터 올해까지 여자 개인전 성적이 5년 연속 5위다. 시상대 앞에서 자꾸만 멈춰 섰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면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수 생활을 그만둬야 하나 생각한 적도 있어요."

정예은은 자신이 힘들 때마다 중학생 때 처음 만났던 강병보 코치의 메시지를 꺼내 읽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정예은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강 코치는 충북도청에서 선수를 지도하고 있다. 더 이상 정예은을 지도하지는 않지만, 제자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제자가 흔들릴 때면 메시지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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